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뒤러에서 피카소까지

비엔나 알베르티나 미술관, 뒤러에서 피카소까지

비엔나에서 미술관을 걷다 보면 이 도시의 예술은 한 시대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클림트의 황금빛 세계를 만났다가 합스부르크가 수집한 오래된 명화를 지나고 나면, 이번에는 조금 더 긴 시간의 미술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곳이 알베르티나 미술관(ALBERTINA)이다. 비엔나 중심부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에서 시작해 모네와 르누아르, 세잔, 마티스, 피카소를 비롯한 여러 시대의 예술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알베르티나의 재미는 유명한 화가들의 이름을 하나씩 확인하는 데만 있지 않다. 드로잉과 판화, 회화와 근현대 작품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법이 시대에 따라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30초 미리보기
비엔나 알베르티나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그래픽 아트 컬렉션으로 알려진 미술관이다. 뒤러의 드로잉과 판화에서 출발해 인상주의와 근현대 미술까지 폭넓은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합스부르크 시대의 궁정 공간과 현대적인 전시가 한 건물 안에서 이어져, 비엔나 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걷기에 좋은 곳이다.

비엔나 중심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미술관

알베르티나는 비엔나 중심부에 자리한다. 호프부르크 궁전과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이 가까워 도시의 문화예술 명소를 걸어서 연결하기 좋은 위치다.

건물 앞에 도착하면 높은 곳에 자리한 미술관과 넓은 테라스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테라스에서 주변을 바라보면 오래된 비엔나의 건축과 거리, 오페라극장 주변의 풍경이 한눈에 이어진다.

그래서 알베르티나 여행은 전시장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비엔나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이미 예술 산책이 시작된다.

오늘날의 알베르티나는 미술관이지만 그 역사를 따라가면 황실과도 연결된다. 오래된 궁정 공간과 현대적인 전시 공간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미술 작품뿐 아니라 건물의 역사까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알베르티나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알베르티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은 작센테셴 공작 알베르트다. 그가 구축한 방대한 그래픽 아트 컬렉션은 오늘날 알베르티나를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회화만을 생각하고 미술관을 찾았다면 이곳의 드로잉과 판화 컬렉션이 조금 새롭게 느껴질 수 있다.

완성된 유화에서는 화가가 오랫동안 고민했던 흔적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드로잉에서는 손의 움직임이 훨씬 가까이 느껴진다. 빠르게 그은 선과 여러 번 고친 흔적, 한 사람의 얼굴을 관찰한 작은 스케치 속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보인다.

그림의 완성된 모습보다 화가의 생각이 시작되는 순간에 가까이 다가가는 셈이다.

감상 TIP
드로잉을 볼 때는 완성된 그림처럼 화려한 색을 찾기보다 선을 따라가 보는 것이 좋다. 어디에서 선이 강해지고 어디에서 가벼워지는지 살펴보면 화가가 무엇을 먼저 바라보았는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뒤러의 토끼, 작은 생명을 바라본 눈

알베르티나를 대표하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어린 토끼》(Young Hare)를 빼놓기 어렵다.

1502년에 제작된 이 작품에는 작은 토끼 한 마리가 화면을 채우고 있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도 없고 왕이나 성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한 생명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바라본 그림이다.

털의 방향과 질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세, 살아 있는 듯한 눈까지 바라보고 있으면 500년도 더 전에 한 화가가 작은 동물을 얼마나 오래 관찰했을지 생각하게 된다.

뒤러는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세밀한 관찰과 뛰어난 드로잉 능력,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한 궁전과 거대한 역사화 사이에서 작은 토끼 한 마리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예술의 크기는 작품의 크기와 반드시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알아두면 좋은 점
뒤러의 《어린 토끼》처럼 종이에 제작된 오래된 작품은 빛과 환경에 민감하다. 보존을 위해 원본이 항상 전시되는 것은 아니므로, 특정 작품을 보기 위해 방문한다면 당일 전시 여부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모네와 르누아르, 그림에 빛이 들어오다

시간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미술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교한 선과 전통적인 회화에서 벗어나 빛과 색이 화면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인상주의 작품 앞에서는 무엇을 그렸는가만큼 그 순간의 빛을 어떻게 보았는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클로드 모네의 그림에서는 같은 풍경도 빛과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화면에서는 사람과 일상의 장면이 따뜻한 색채와 붓질 속에서 살아난다.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풍경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붓질과 색이 보인다. 다시 몇 걸음 뒤로 물러서면 색들이 서로 만나 빛과 공기가 된다.

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는 재미는 이렇게 거리를 바꿔 보는 데도 있다. 같은 작품이 가까이에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세잔에서 피카소까지, 익숙한 세계가 흔들리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 그림 속 세상은 다시 달라진다.

화가들은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형태를 단순하게 만들고, 색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하나의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폴 세잔의 작품을 지나며 자연과 사물이 조금씩 구조와 형태로 변하고, 앙리 마티스의 색채에서는 현실보다 감정과 감각이 앞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에 이르면 익숙했던 얼굴과 몸, 공간의 모습이 과감하게 달라진다.

처음 현대미술을 접하면 이런 작품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 얼굴이 이렇게 생겼는지, 왜 현실과 똑같이 그리지 않았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질문을 조금 바꾸면 작품이 재미있어진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그 질문 하나만 가지고 작품 앞에 서도 충분하다. 예술가는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궁전의 방과 현대미술이 한곳에 있다

알베르티나에는 작품만큼 흥미로운 공간이 또 있다. 과거 합스부르크 시대의 분위기를 간직한 역사적인 방들이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벽 장식, 정교한 가구가 놓인 공간을 지나면 조금 전까지 보았던 현대미술과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이 대비가 알베르티나를 특별하게 만든다.

오래된 궁정의 방을 지나 현대적인 전시 공간으로 들어가고, 다시 수백 년 전의 드로잉을 바라본다.

한 건물 안에서 시간이 앞뒤로 움직이는 듯하다.

비엔나라는 도시도 어쩌면 비슷하다. 합스부르크 시대의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리에서 오늘의 사람들이 카페에 앉고, 현대미술 전시를 보고, 저녁에는 클래식 음악회를 찾는다.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서로 밀어내지 않고 함께 존재한다. 그것이 비엔나 문화예술 여행에서 자주 만나는 풍경이다.


모든 그림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은 미술 여행

미술관에 가면 작품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낄 때가 있다. 화가의 생애와 미술사조, 작품의 의미를 알아야 제대로 감상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미술관에서는 조금 다르게 걸어도 좋다.

마음에 드는 그림 앞에서 오래 서 있고, 별다른 느낌이 없는 작품은 천천히 지나가도 된다.

어떤 사람은 뒤러의 세밀한 선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모네의 빛을 좋아할 수 있다. 누군가는 피카소 앞에서 오래 고민할지도 모른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멈추게 되는 작품을 발견하는 것. 그것도 미술 여행의 즐거움이다.

알베르티나를 나와 다시 비엔나의 거리를 바라보면 미술관 안에서 지나온 수백 년의 시간이 이상하게 도시와 잘 어울린다.

뒤러에서 피카소까지 걸었던 시간이 끝났지만 예술은 미술관 문 안에만 남아 있지 않는다.

건축과 거리, 사람들의 옷과 카페의 의자, 도시를 채우는 음악까지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좋은 미술관을 다녀온 뒤에는 세상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알베르티나에서의 하루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여행 정보

장소: ALBERTINA
주소: Albertinaplatz 1, 1010 Wien, Austria
주요 관람: 그래픽 아트 컬렉션, 근현대 미술, 특별전, 역사적인 궁정 공간
함께 둘러보기: 비엔나 국립오페라극장, 호프부르크 궁전, 비엔나 중심가

주의사항
알베르티나는 전시 교체가 이루어지는 미술관이므로 유명 소장품이라고 해도 방문 당일 원본이 전시되어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특히 종이 작품은 보존을 위해 상시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 보고 싶은 특정 작품이나 특별전이 있다면 방문 전에 공식 전시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오스트리아 문화예술 산책, 첫 다섯 걸음

벨베데레에서 클림트의 황금빛 그림을 만났고, 비엔나 음악협회 황금홀에서는 음악이 공간을 채우는 순간을 따라갔다.

쇤브룬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생활과 모차르트의 이야기를 만났고, 미술사박물관에서는 황실이 수집한 유럽의 명화를 걸었다.

그리고 알베르티나에서는 뒤러에서 인상주의와 피카소까지 예술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따라왔다.

다섯 장소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도시에서 만난다.

음악과 미술, 궁전과 정원, 왕가의 역사와 현대의 일상까지 함께 살아 있는 도시 비엔나다.

유럽 문화예술 산책의 오스트리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는 오래된 카페와 제체시온, 모차르트의 잘츠부르크와 축제의 무대까지 조금 더 넓은 오스트리아로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