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제체시온, 클림트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연 곳

비엔나 제체시온, 클림트와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대를 연 곳

비엔나를 걷다 보면 화려한 궁전과 오래된 공연장, 합스부르크 시대의 건축이 도시 곳곳에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조금 다른 모습의 건물을 만나게 된다.

하얀 외벽 위에 황금빛 잎사귀가 모여 만든 둥근 돔이 올라가 있고, 정면에는 짧지만 강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이곳이 바로 비엔나 제체시온(Wiener Secession)이다. 19세기 말, 기존의 예술 제도와 다른 길을 걷고 싶었던 젊은 예술가들이 만든 공간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한 비엔나 분리파 예술가들은 과거의 방식만 반복하는 대신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체시온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비엔나 예술이 오래된 전통에서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던 순간을 보여주는 하나의 선언처럼 느껴지는 장소다.

30초 미리보기
비엔나 제체시온은 19세기 말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이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만든 비엔나 분리파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하얀 건물과 황금빛 돔, 정면에 새겨진 예술의 자유에 대한 문구가 이들의 정신을 보여준다. 내부에서는 클림트가 1902년 베토벤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베토벤 프리즈》를 만날 수 있다. 미술과 음악, 건축이 하나로 연결되는 비엔나 모더니즘의 중요한 장소다.

왜 젊은 예술가들은 기존 미술계를 떠났을까

19세기 말 비엔나는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다. 궁전과 오페라극장, 미술관이 들어섰고 음악과 미술, 문학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예술가들 가운데 일부는 기존의 미술 제도가 너무 보수적이라고 느꼈다. 새로운 표현과 외국의 현대미술을 받아들이는 데 제약이 많았고, 기존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작품은 충분히 소개되기 어려웠다.

그들은 더 자유롭게 전시하고 싶었다. 회화만이 아니라 건축과 디자인, 공예까지 서로 연결되는 새로운 예술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1897년 비엔나 분리파가 만들어졌다.

‘분리’라는 이름에는 기존의 예술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이 새로운 움직임의 중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문화예술 TIP
제체시온을 방문하기 전에 벨베데레에서 클림트의 《키스》를 보고 오면 더욱 흥미롭다. 제체시온에서는 클림트가 황금빛 장식과 상징을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켜 갔는지, 그의 예술이 한 시대의 변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었는지 더 넓게 볼 수 있다.

황금빛 돔, 새로운 예술을 알리는 건축

제체시온 건물은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얀 외벽 위에 황금빛 잎사귀가 모여 만든 구형의 돔이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궁전의 금장 장식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장식은 있지만 과거의 궁전처럼 무겁지 않다. 건물의 선은 비교적 단순하고, 황금빛 돔이 그 위에 하나의 상징처럼 놓여 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익숙한 미술관과 달랐을 것이다. 건축 자체가 “이 안에서는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겠다”는 선언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제체시온의 중요한 점은 예술 작품만 새롭게 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건축과 전시 공간, 가구와 장식, 회화와 조각을 하나의 예술적 경험으로 연결하려 했다.

이 생각은 이후 비엔나 모더니즘과 디자인의 중요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제체시온 정면에는 이 건물을 상징하는 유명한 문구가 있다.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

짧은 문장이지만 비엔나 분리파가 무엇을 원했는지 잘 보여준다.

과거의 예술을 부정하겠다는 의미라기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에도 그 시대만의 예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가깝다.

그리고 예술가는 기존의 규칙과 제도에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새로운 표현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100년이 넘은 문장이지만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새로운 예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이것도 예술인가, 왜 이렇게 만들어야 하는가, 기존 방식으로 하면 안 되는가.

제체시온 정면의 문장은 그런 질문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02년, 베토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전시

제체시온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 가운데 하나는 1902년에 열린 제14회 전시다.

이 전시는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21명의 예술가가 함께 참여했고, 건축과 회화, 조각을 하나의 주제 아래 연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1

전시의 중심에는 조각가 막스 클링거(Max Klinger)가 제작한 베토벤 조각상이 놓였다.

그리고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 전시를 위해 오늘날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라고 불리는 거대한 벽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길이 약 34미터에 이르는 장대한 프리즈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과 그 음악에 대한 당시의 해석에서 영감을 받았다. 2

그림과 음악, 조각과 건축이 하나의 전시 안에서 만났다.

당시 비엔나 분리파가 꿈꾸었던 ‘종합예술’의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행복을 찾아가는 인간

《베토벤 프리즈》 앞에 서면 처음에는 화려한 장식과 긴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행복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그 길에는 고통과 욕망, 불안과 적대적인 힘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술을 통해 이상과 행복에 도달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서사는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의 정신과 연결된다. 특히 마지막 악장의 ‘환희의 송가’가 가진 인간적 이상과 행복에 대한 열망이 클림트의 상징적인 이미지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표현된다. 3

음악에는 색이 없고, 그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클림트의 작품 앞에서는 마치 그림을 통해 음악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선이 흐르고, 금빛 장식이 반복되고, 인물과 패턴이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진다.

작품 감상 TIP
《베토벤 프리즈》는 한 장면만 보는 것보다 벽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전체 흐름을 보는 것이 좋다. 인물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장식과 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면 하나의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 듣는 것처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클림트의 황금시대는 이곳에서도 시작되고 있었다

《베토벤 프리즈》를 바라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클림트의 《키스》가 떠오르기도 한다.

황금빛과 장식, 평면적인 표현, 인물과 패턴이 하나로 섞이는 방식 때문이다.

실제로 《베토벤 프리즈》는 클림트의 예술이 그의 유명한 황금시대로 향해가던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4

벨베데레에서 《키스》를 본 뒤 이 작품을 보면 클림트가 어느 날 갑자기 황금빛 화가가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러 실험과 전시,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 당시 비엔나의 새로운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한 화가의 대표작만 보는 것보다 그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 미술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이유다.


베토벤은 왜 새로운 예술가들의 상징이 되었을까

흥미로운 점은 새로운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던 젊은 예술가들이 오래전의 음악가 베토벤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베토벤은 단순히 유명한 작곡가가 아니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밀고 나간 음악가, 기존의 음악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한 창조적인 예술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1902년의 전시는 과거를 기념하는 행사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선언이기도 했다.

클림트의 그림과 베토벤의 음악이 만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새로운 표현을 향해 나아갔다는 점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제체시온은 아직도 현대미술을 보여준다

제체시온을 과거의 미술사 장소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곳은 오늘날에도 현대미술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베토벤 프리즈》가 상설 전시되는 한편, 다른 공간에서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전시가 계속 열린다. 5

이 점이 제체시온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100여 년 전 새로운 예술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오늘날에도 새로운 작품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의 혁신이 박물관 속 기록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예술과 계속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건물 정면에 적힌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문장도 그래서 더 현재적으로 느껴진다.


비엔나에서 새로운 시대를 만나는 방법

비엔나 여행에서는 오래된 것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합스부르크의 궁전과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음악, 수백 년 된 미술관과 교회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이 도시가 흥미로운 이유는 오래된 것을 잘 보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언제나 그 시대의 젊은 예술가들이 기존의 방식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

클림트와 비엔나 분리파도 그랬다.

오늘날에는 그들의 작품이 고전이 되었지만 그들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었고, 때로는 낯설고 논쟁적인 예술이었다.

제체시온 앞에 서서 황금빛 돔을 올려다본다.

한때 새로운 시대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건물이 아직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오늘도 또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보여준다.

비엔나에서 예술의 역사를 걷는다는 것은 과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비엔나 제체시온 여행 정보

장소: Secession Wien
주소: Friedrichstraße 12, 1010 Wien, Austria
대표 작품: Gustav Klimt, Beethoven Frieze, 1902
관람 포인트: 황금빛 돔, 건물 정면의 문구, 《베토벤 프리즈》, 현대미술 기획전
함께 둘러보기: Karlsplatz, Naschmarkt, Wien Museum, Vienna State Opera

주의사항
제체시온의 현대미술 전시는 일정에 따라 바뀐다. 《베토벤 프리즈》는 상설 전시되고 있지만, 운영시간과 임시 휴관, 기획전 정보는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최신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다음 유럽문화예술 산책

비엔나에서 클림트와 분리파가 새로운 예술을 만들던 시간을 만났다면, 다음에는 비엔나를 떠나 오스트리아 남쪽의 그라츠로 향한다.

오스트리아 10편은 「그라츠, 오래된 유럽과 현대예술이 함께 사는 도시」다.

중세의 구시가지와 현대적인 쿤스트하우스, 무어강 위의 독특한 건축과 오래된 거리까지, 과거와 현대가 한 도시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는지 따라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