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 대성당, 600년을 이어 완성한 고딕의 꿈

쾰른 대성당, 600년을 이어 완성한 고딕의 꿈

독일 서부의 도시 쾰른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는 것은 라인강도, 호엔촐레른 다리도 아니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거대한 두 개의 첨탑이다.

바로 쾰른 대성당(Kölner Dom)이다.

검은빛을 띤 석재, 끝없이 이어지는 조각과 아치,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첨탑은 멀리서 바라볼 때부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쾰른 대성당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크고 웅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성당은 1248년에 공사를 시작해 1880년에야 완성되었다.

중간에 오랜 공사 중단의 시간이 있었지만 후대의 건축가들은 중세의 계획을 다시 이어받아 수백 년 전 사람들이 꿈꾸었던 고딕 대성당을 끝내 완성했다.

그래서 쾰른 대성당은 한 시대가 만든 건축물이 아니라 여러 세대가 같은 꿈을 이어간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30초 미리보기
쾰른 대성당은 1248년에 착공해 1880년에 완성된 독일 고딕 건축의 대표작이다. 동방박사의 성유물을 모시기 위해 거대한 새로운 성당이 계획되었으며, 프랑스 고딕 건축의 영향을 받아 높은 아치와 스테인드글라스, 하늘을 향해 솟은 첨탑이 만들어졌다. 오랜 공사 중단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설계 정신을 이어 완성되었고,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라인강의 도시 쾰른

쾰른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다.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고, 라인강을 따라 상업과 교통, 종교와 문화가 발전했다.

중세에 들어 쾰른은 더욱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상인과 장인, 성직자와 순례자들이 모였고 도시는 빠르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성당이 있었다.

중세 도시에서 대성당은 단순한 종교시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이고, 축제가 열리고, 왕과 귀족, 시민과 여행자가 함께 만나는 도시의 중심이었다.

높은 종탑은 멀리서도 도시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성당의 크기와 아름다움은 도시의 힘과 자부심을 보여주었다.

쾰른 사람들에게 대성당은 신앙의 공간인 동시에 자신들의 도시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었다.

여행 TIP
쾰른 중앙역에서 나오면 거의 바로 대성당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기보다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전체 모습을 바라본 뒤 천천히 정면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좋다. 높이와 규모가 어떻게 달라져 보이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동방박사의 성유물이 쾰른에 오다

쾰른 대성당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동방박사의 성유물 이야기를 만나야 한다.

12세기 중반, 쾰른의 대주교 라이날트 폰 다셀은 밀라노에서 동방박사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유물을 쾰른으로 가져왔다.

성경에서 동방박사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찾아가 아기 예수에게 황금과 유향, 몰약을 바친 인물들로 전해진다.

그들의 성유물이 쾰른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도시의 종교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

유럽 여러 지역에서 순례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기존의 성당은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어려워졌다.

쾰른은 새로운 성당이 필요했다.

단순히 더 큰 예배 공간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성유물을 모시는 장소답게 유럽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을 세우고자 했다.

그렇게 쾰른 대성당이라는 거대한 계획이 시작되었다.


1248년, 첫 돌을 놓다

1248년 8월 15일, 오늘날의 쾰른 대성당을 위한 초석이 놓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새로운 건축양식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오늘날 고딕 건축이라고 부르는 양식이다.

쾰른의 새로운 대성당 역시 아미앵 대성당과 파리의 생트샤펠 등 당대의 프랑스 고딕 건축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단순히 다른 성당을 따라 만들려 한 것은 아니었다.

쾰른의 건축가들은 이미 존재하던 대성당보다 더 크고, 더 높으며, 더 완전한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 기술의 한계에 가까울 만큼 대담한 계획이었다.

새로운 성당의 공사는 동쪽의 성가대석 부분부터 시작되었다.

높은 기둥과 아치, 커다란 창문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전의 로마네스크 교회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벽은 더 높아지고, 창은 더 넓어졌다.

돌로 만든 건물인데도 마치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새로운 건축이었다.

문화예술 TIP
쾰른 대성당 내부에 들어가면 먼저 위를 바라보자. 고딕 건축은 수평보다 수직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기둥과 아치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눈으로 따라가면 건축이 사람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하늘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느낄 수 있다.

고딕 건축은 왜 하늘을 향했을까

고딕 대성당을 바라보면 가장 먼저 높이가 느껴진다.

뾰족한 첨탑과 아치, 길게 뻗은 기둥은 끊임없이 위를 향한다.

그것은 단순히 더 높은 건물을 만들기 위한 경쟁만은 아니었다.

중세 사람들에게 성당은 신의 세계를 지상에서 경험하는 공간이었다.

높은 천장은 인간의 작은 존재를 느끼게 했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빛은 성스러운 세계를 상징했다.

건축은 신앙을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였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높이와 빛, 조각과 색채를 통해 종교적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딕 건축에서는 빛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벽을 두껍게 막는 대신 큰 창을 만들고, 그곳에 색유리를 넣어 빛 자체를 예술로 바꾸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빛이 붉고 파란 색으로 바닥과 기둥에 떨어지면 성당 내부는 현실의 공간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돌로 만든 건물 안에 빛으로 또 하나의 건축을 만든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 빛으로 읽는 성경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창에는 성경의 이야기와 성인들의 삶, 종교적인 상징이 그림처럼 표현되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때때로 '빛으로 읽는 성경'처럼 경험했다.

햇빛은 하루 동안 계속 움직인다.

아침과 오후, 맑은 날과 흐린 날에 따라 창의 색과 성당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같은 공간인데도 빛이 바뀌면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고딕 건축가들은 바로 그 변화를 이용했다.

건축과 회화, 빛과 시간이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이었다.

작품 감상 TIP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때는 창 자체만 바라보지 말고 그 빛이 기둥과 바닥에 어떻게 떨어지는지도 함께 살펴보자. 고딕 성당에서는 빛이 단순히 내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중요한 예술 요소가 된다.

유럽 최대 규모의 성유물함, 동방박사 성유물함

쾰른 대성당 안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품 가운데 하나는 동방박사 성유물함(Shrine of the Magi)이다.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에 걸쳐 제작된 이 성유물함은 금빛 장식과 보석, 정교한 인물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상자라기보다 축소된 황금빛 성당을 보는 듯한 모습이다.

그 안에는 동방박사의 것으로 전해지는 성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중세 사람들에게 성유물은 과거의 성스러운 인물과 현재의 신앙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사람들은 먼 거리를 걸어 성유물을 찾아왔고, 그 앞에서 기도하며 위로와 기적을 바랐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도시의 경제와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숙소와 시장이 성장하고, 길과 다리가 연결되며 도시는 점점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쾰른 대성당의 웅장한 규모 뒤에는 이처럼 신앙과 순례, 사람들의 이동이 함께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공사

쾰른 대성당의 공사는 처음부터 순조롭게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성가대석과 일부 건물은 완성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사의 속도는 점차 느려졌다.

정치와 경제 상황이 변했고, 건축에 대한 관심과 시대의 취향도 달라졌다.

결국 16세기에 들어 대규모 공사는 사실상 중단되었다.

완성되지 않은 남쪽 탑에는 거대한 중세 건축용 크레인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쾰른 사람들은 미완성의 대성당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성당이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수백 년 뒤, 중세에 그려졌던 오래된 설계도가 다시 발견되고 독일 사회에서는 고딕 건축과 중세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높아졌다.

멈춰 있던 건축의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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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동안 멈춰 있던 성당

쾰른 대성당의 역사를 생각하면 가장 놀라운 것은 건물의 높이보다 시간의 길이인지도 모른다.

1248년에 시작된 거대한 공사는 여러 세대의 석공과 장인들을 거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중세가 저물고 시대가 변하면서 성당 건축을 둘러싼 환경도 달라졌다.

종교와 정치의 변화,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새로운 건축양식의 등장은 오랫동안 계속되던 공사의 열기를 식게 했다.

결국 16세기에 들어 대규모 건축 작업은 사실상 멈추었다.

성당은 완성되지 않은 채 쾰른의 한가운데 남았다.

남쪽 탑 위에는 공사에 사용되던 거대한 크레인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 모습은 몇 년이나 몇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쾰른의 풍경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은 미완성의 성당을 바라보며 자랐고, 그 아이들의 손자와 증손자 역시 완성되지 않은 탑을 바라보며 살아갔다.

한 세대가 시작한 일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또 다른 세대가 기억하는 건축.

쾰른 대성당은 그렇게 완성되기 전부터 이미 도시의 역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낭만주의 시대, 중세를 다시 바라보다

18세기 말과 19세기에 들어 유럽에서는 중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낡고 어두운 시대처럼 여겨졌던 중세의 건축과 예술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독일 낭만주의 역시 이러한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시인과 화가, 작가와 지식인들은 오래된 성과 폐허, 숲과 전설, 중세의 성당에서 자신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정신적인 세계를 찾으려 했다.

괴테 역시 젊은 시절 고딕 건축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을 바라보며 고딕 건축을 새로운 시선으로 평가한 그의 글은 당시 중세 건축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었다.

높은 첨탑과 복잡한 장식을 혼란스럽고 낡은 양식으로 보는 대신, 한 시대의 정신과 창조성이 만들어낸 예술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쾰른 대성당도 다시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오래된 성당을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수백 년 전에 시작된 이 건축을 우리 시대가 다시 이어갈 수는 없을까.

문화예술 TIP
쾰른 대성당을 바라볼 때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함께 떠올려보면 흥미롭다. 낭만주의 예술가들이 오래된 성과 성당, 폐허와 전설에 매료되었던 시대에 미완성의 쾰른 대성당 역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강력한 문화적 상징으로 다시 떠올랐다.

중세의 설계도가 다시 나타나다

성당의 완성을 향한 움직임에는 오래된 설계 자료의 재발견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건축가들이 계획했던 대성당 서쪽 정면과 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설계 자료가 다시 알려지면서 수백 년 전의 계획을 실제로 이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19세기의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새로운 모습의 성당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세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전체 모습을 가능한 한 이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수백 년이나 흘렀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도 달라졌고 건축에 참여하는 사람도 모두 바뀌었다.

하지만 한 장의 설계도와 이미 세워져 있던 돌벽이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을 연결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중세 장인이 다듬었던 돌 위에 19세기의 장인이 다시 돌을 올렸다.

한 사람이 평생 완성을 볼 수 없는 건축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수백 년 뒤 태어난 사람들이 그 꿈을 이어받았다.

쾰른 대성당이 감동적인 이유는 바로 이 시간의 연결에 있다.


1842년, 멈췄던 공사가 다시 시작되다

1842년, 쾰른 대성당의 완성을 위한 공사가 공식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수백 년 동안 멈춰 있던 성당에 다시 석공과 기술자, 건축가들이 모여들었다.

19세기는 중세와는 전혀 다른 시대였다.

철도와 산업이 발전하고 새로운 건축기술과 장비가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목표는 놀랍게도 오래된 것이었다.

중세 사람들이 남긴 계획을 이어 대성당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기술이 수백 년 전의 꿈을 완성하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공사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오랫동안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서쪽 정면과 두 개의 거대한 첨탑이 점차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쾰른 시민들에게 그 모습은 단순한 건축 현장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조상들이 끝내지 못한 일을 자신들의 시대가 이어간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대성당은 종교적인 공간이면서 점차 독일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건축으로도 받아들여졌다.

건축 감상 TIP
쾰른 대성당의 외벽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수많은 조각과 기둥, 작은 첨탑이 끝없이 이어진다. 거대한 전체 모습만 보지 말고 작은 석조 장식 하나까지 바라보면 이 건물이 얼마나 많은 장인의 시간과 노동으로 만들어졌는지 더욱 실감할 수 있다.

1880년, 마침내 두 첨탑이 하늘에 닿다

1880년, 쾰른 대성당은 마침내 완성되었다.

1248년 첫 돌을 놓은 뒤 63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물론 그 모든 기간 동안 공사가 계속된 것은 아니었다.

수백 년에 이르는 긴 중단이 있었고, 시대도 사람도 완전히 달라졌다.

그럼에도 처음 시작된 건축의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이어졌다는 사실은 놀랍다.

완성된 두 첨탑은 약 157미터 높이까지 솟아올랐다.

당시 쾰른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로 기록될 만큼 거대한 존재였다.

하지만 숫자로만 이 건물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성당 아래에 서서 탑 끝을 올려다보면 목을 한참 뒤로 젖혀야 한다.

가까이에서는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기도 어렵다.

돌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마치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중세 건축가들이 꿈꾸었던 수직의 세계가 수백 년 뒤 마침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성당을 가득 채우는 색채의 시간

쾰른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외관에서 느꼈던 무게와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높은 천장과 긴 회랑 사이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빛이 들어온다.

쾰른 대성당에는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는 여러 시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창도 함께 변화해온 것이다.

성경의 인물과 이야기를 담은 전통적인 창이 있는가 하면, 현대에 제작된 전혀 다른 모습의 작품도 있다.

그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 현대미술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가 디자인한 남쪽 트랜셉트의 창이다.

2007년에 공개된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성인이나 성경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다.

수많은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격자처럼 이어지며 거대한 색채의 화면을 만든다.

햇빛이 창을 통과하면 붉은색과 파란색, 노란색과 초록색의 빛이 성당 내부 곳곳에 흩어진다.

13세기에 시작된 고딕 대성당 안에 21세기의 추상미술이 들어온 것이다.

처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시대가 빛이라는 하나의 언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만난다.

작품 감상 TIP
리히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햇빛의 방향과 날씨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창 자체의 색만 보지 말고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성당의 돌기둥과 바닥에 어떻게 번지는지도 함께 바라보면 좋다. 중세 건축과 현대미술이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대성당에 울려 퍼지는 음악

고딕 성당은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다.

높은 천장과 돌벽, 긴 회랑은 소리에도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오르간이 울리면 소리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성당의 높은 천장과 기둥 사이로 길게 퍼져나간다.

합창의 목소리 역시 돌벽에 부딪혀 겹쳐지고 다시 천천히 돌아온다.

중세 사람들에게 음악은 건축과 분리된 예술이 아니었다.

예배의 노래와 종소리, 오르간과 합창은 빛과 향, 조각과 건축이 함께 만드는 종교적 경험의 일부였다.

그래서 텅 빈 성당을 바라볼 때와 그 안에서 실제 음악이 울려 퍼질 때의 느낌은 전혀 다르다.

눈으로는 높이를 느끼고, 귀로는 공간의 깊이를 느낀다.

건축이 음악을 품고 음악이 다시 건축의 크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전쟁 속에서도 남아 있던 두 개의 첨탑

쾰른 대성당은 완성된 뒤에도 평온한 역사만을 지나온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쾰른은 대규모 공습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도시의 수많은 건물이 무너졌고 대성당 역시 여러 차례 폭격의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거대한 구조 전체가 붕괴하지는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가 된 쾰른의 사진 속에서 두 개의 첨탑은 상처 입은 도시 위로 여전히 솟아 있었다.

그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수백 년 동안 완성을 기다렸던 성당이 이번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이후 손상된 부분에 대한 복원과 보존 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작업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끝난 일이 아니다.

비와 바람, 대기오염과 시간은 계속해서 돌을 변화시킨다.

석공과 보존 전문가들은 낡은 돌을 조사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수한다.

어쩌면 쾰른 대성당은 1880년에 완성되었지만 지금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인지도 모른다.

한 세대가 지은 성당을 다음 세대가 돌보고, 또 그다음 세대에게 건네준다.

그렇게 생각하면 쾰른 대성당의 600년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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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을 건너온 게로 십자가

쾰른 대성당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동방박사 성유물함 외에도 오랜 시간을 품은 중요한 작품이 남아 있다. 10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게로 십자가(Gero Cross)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는 위엄 있는 왕이라기보다 고통을 겪는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져 있고 몸에는 죽음을 앞둔 육체의 무게가 느껴진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십자가 앞에서 기도했을까.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조각 자체보다 그 앞에 쌓여온 사람들의 시간이 더 깊게 다가온다.

작품 감상 TIP
오래된 종교미술을 만날 때는 작품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그 앞에서 무엇을 느끼고 기도했을지도 함께 생각해 보자. 예술과 사람의 삶이 조금 더 가까워진다.

라인강에서 바라보는 대성당

쾰른 대성당은 가까이에서만 바라보면 그 거대한 전체 모습을 한눈에 담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라인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아한다.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너 뒤돌아보면 라인강과 다리 너머로 두 개의 첨탑이 솟아 있다. 기차가 다리를 지나고 배가 강물을 가르며 흐르는 가운데 대성당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도시를 지켜본다.

중세의 순례자와 19세기의 건축가, 전쟁을 겪은 시민과 오늘의 여행자가 모두 같은 두 첨탑을 바라보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여행 TIP
대성당을 둘러본 뒤 호엔촐레른 다리를 건너 라인강 반대편에서 성당 전체를 바라보는 동선을 추천한다. 해 질 무렵에는 대성당과 다리, 라인강이 함께 어우러진 쾰른의 대표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600년을 이어 완성한 문화유산

쾰른 대성당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딕 건축의 걸작이라는 점뿐 아니라 수백 년의 시간 속에서도 중세에 시작된 건축의 계획과 정신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1248년 첫 돌을 놓았던 사람들은 1880년 완성된 두 첨탑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돌을 다듬고 기둥을 세웠고, 수백 년 뒤 또 다른 사람들이 그 미완성의 꿈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쾰른 대성당은 완성된 건축물이라기보다 세대를 이어온 하나의 약속처럼 느껴진다. 사람의 생은 짧지만 사람이 남긴 예술과 꿈은 다음 사람에게 건너가 훨씬 오래 살아남는다.


쾰른 대성당 여행 정보

장소 : Cologne Cathedral (Kölner Dom)
위치 : Domkloster 4, 50667 Köln, Germany
착공 : 1248년
완공 : 1880년
세계유산 : 1996년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함께 둘러보기 : 호엔촐레른 다리, 라인강 산책로, 쾰른 구시가지, 루트비히 미술관


작가노트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완성된 건물보다 첫 돌을 놓았던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쾰른 대성당은 더욱 그렇다. 자신의 생애에는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는 돌을 다듬고 또 누군가는 그 위에 새로운 돌을 올렸다.

음악도 글도 어쩌면 이와 닮아 있다. 오래전 작곡가가 남긴 음악이 오늘의 연주자에게서 다시 살아나듯, 한 시대에 시작된 예술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건너가며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나 역시 글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돌 하나를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남긴 한 문장이 어디까지 가 닿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을 정성껏 기록해 두고 싶다.

사람의 시간은 짧지만 예술을 향한 마음은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건너가며 우리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다음 유럽 문화예술 산책

쾰른 대성당을 뒤로하고 다음에는 라인강을 따라 여행한다.

「라인강, 시와 전설 그리고 음악이 흐르는 독일 낭만주의의 강」

로렐라이의 전설과 하이네의 시, 강변의 오래된 성과 포도밭, 그리고 슈만과 바그너의 음악을 따라 독일 낭만주의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본다.